좋은 시와 글

후백 황금찬님의 시 몇편

하늘향기내리 2009. 5. 15. 15:36

황금찬

1918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53년 <문예>지와 <현대문학>지 시 추천.

시문학상,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화상 수상.

시집 <현장>외 다수.

시론집 <정신으로 승리한 문학> 외.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역임.

 

 

<추수감사>

감사절

   황금찬

 

주신 것은

바칠 수 있게 하시고

받지 못한 것은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받은 감사와

받을 수 있는 감사를

함께 드리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보다

앞으로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더 절실하게

드리는 사람이 되고자 원합니다.

 

산과 들과 하늘과 바다에

저렇듯이 익어가는

영혼의 교훈 앞에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신 앞에 감사를 드리는

그 기쁨밖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 외에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아마 사람밖엔

감사드릴 수 있는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생명체로 태어났다는

그 사실의 감사다.

 

하느님,

당신에게 감사드릴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탄절>

아기 예수

  황금찬

 

비파 소리는 귀에 멀고

아기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 눈 이마에 별 나비가 날고

입 코 언저리엔 달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등불도 잠이 든 작은 마을에

하늘의 횃불이 쏟아지고

산과 들에는 모닥불이 타고

목동들은 화려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아기의 호흡

강물도 바다도 잠이 들고

하늘만이 살아서 눈 위에 오는데

입가에 서리는 미소, 그것은

사랑이요, 사랑이며, 사랑이라.

 

아기!

당신이 온 날은 천으로

몇 개를 손꼽는 62년,

오늘도 저 종각에 촛불을 켜고

어느 문 앞에서 당시을 기다리랍니까?

나와 또 내 마음 속에 다시 와야할

아기!

에수여 ---   

 

 

<부활절>

부활절

   황금찬

 

아침을 헤치며 여인들은

무덤을 찾아갔다.

권세의 봉인이 철장 앞에

질그릇 부서지듯 흩어지고

돌을 세워 문을 막고

하늘의 섭리를 모르리라던

그 육중한 교만은

이제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예수님이 누웠던 자리엔

주검을 이긴 한줄기의 빛이

지혜같이 서리어 있고

주검을 가리웠던 수의들은

퇴색한 채 천 년의 이끼

내가 다시 살아나 여기 있으니

관 속에서 나를 찾지 말라.

 

잔정 다시 사신 주님이시라면

옛 모습으로 돌아오시어

손의 못 자국을 보게 하시고

태양같이 누부신 그늘 없는 바다를

사랑이 핀 향로같이 가슴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소원은 강물이 되어 가슴으로 줄기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고 있었다.

이제 마음에 남은 자는

죽은 자였으나 오늘 마음에 살아옴은

그것은 광명처럼 살아 있느니

무덤 안에 내가 있지 않고

빛 안에, 음성 속에, 바람 곁에

나는 살아 있다. 파도처럼

부활하였다. 이제 오늘도 내일도 아닌

그 어간에 시간을 넘어 시간이

이르지 못하는 그 세상에서

나는 살아 났느니라.

 

길가에서 제자들에게 부할하시고

저 물결 뛰노는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예수 나의 주

하늘이 열리고 땅이 있고는 처음

생긴 하늘의 섭리

너무나도 크기에, 그렇게 깊고

넓으며 우리들의 생각이 이르지 못하는

높이 그만한 위치에서 생긴 일

예수의 부활.

 

노래하라. 예수의 부활은

우리들의 재생이다.

여기에 영원이 있고 영생이 있느니

그 예수의 부활을 주신

절대한 소망으로 노래하라.

그날 아침에 울려오는 종소리를

기차게 노래하라. 하늘의 합창으로

오늘 부활의 아침을 노래하라.

 

 

<새해>

새 노래

  황금찬

 

아침엔

밝은 표정과 맑은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그 날의 질서와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끝난 줄 모르고

일어나는

이 무서운 전쟁과

사랑이 이르지 못하는 곳의

미움이며식를

물리치고

이 세상을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덮어 달라고

기도드리고.

 

악하고 의롭지 않은 사람들이

꽃같은 마음을 해치고

자유를 시기하며

선한 마음을 거역하며

하나님께 항상 패역을 일삼는

그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이

비가 내리듯이

내리어지기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이 해에는 남과 이웃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해가 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하늘에 쌓는 그런 해가 되고 또한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가 복음화하여 달라고 기도드리며

그리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이 해에는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평화의 새가 되어 달라고

꽃 한 송이가 되게 하라고

기도드리고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봄날의 기도   

황 금 찬

 

한 알의 밀이 이 봄날

땅에 묻히다.

세월이 흘러간 뒤

백천 개의 밀을

다시 찾았다.

 

이 하늘의 이치를

아는 사람만이

하늘의 문을 열수 있으리라.

 

이 봄날

내 이웃을 위하여

사랑의 옷을

밀알처럼 땅에 묻을 것을

 

이제 내가 가고 나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하나님

이 봄날 제가 한 알의 밀이 되어

여기 묻히게 하여 주십시오.

 

 

 

7월의 새벽

황 금 찬

 

오늘밤

닭이 벌써 세 번을 울었는데

내게는 아직도 뉘우침이 없으니

아! 7월의 아침이 이리도 슬프다.

 

이제는 잠을 깨어야 한다.

이 7월과 8월이 가기 전에

9월과 10월이 오면

늦으리라.

 

저 여름 나무에 익어가는

신앙의 과실이

병들기 전에

 

청자 매병에 담게 하고

오늘이 가고 또 내일도 가면

아! 이제 다시 오지 않는

여름의 모습

 

주님,

그 해의 여름은

두 번 오지 않습니다.

이 계절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여주십시오.

 

 

 

가을에

황 금 찬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가을은

지혜로 왔습니다.

 

장미와

해바라기를

연한 햇볕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가을의 기도는

잎이 지듯

꽃 향기가 구름에 실립니다.

조용한 기도

 

가을은

기도 드리는 계절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다시 그대는 나에게

기도 드리는 계절입니다.

 

 

 

눈이 내리는 밤에

황 금 찬

 

예수님의 음성은

밤 눈이 내리듯

그렇게 고요했습니다.

 

내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소리도

밤 눈처럼

조용하게 그리고 새벽이 오듯

황홀하게

그런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얀 눈빛은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새벽에 내리는

눈빛입니다.

 

주님

우리들도

새벽에 내리는 눈 같은

음성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게 하여 주십시오.

 

 

 

소녀의 기도

황 금 찬

 

밤 예배가 끝나고 다 돌아간

빈 교회에 소녀가 앉아서

기도를 드린다.

 

소녀의 기도소리는

맑은 물소리 같다.

또 그처럼 쉬지를 않는다.

 

주여!

꽃이 피는 봄이 오듯이 이 땅에도

은혜를 내리어 주십시오.

가난과 불안과 불목과 시기와

불신과

이렇듯이 탁류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을 건져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통일과 화목을 주십시오.

주여!

이 소녀에게 청결과 신앙을 주십시오.

 

교회 밖에는 봄바람이 불고 있다.

달을 받아 배꽃이 더욱 희고

이름 없는 지역에서

이 밤에 꽃잎이 질 것이다.

 

소녀는 향불이다.

향불이다,

향목이 타듯이 타고 있다.

소녀의 기도는 파란 빛깔

모두 잠들어 자는 이 밤에

소녀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향연이 다 오르고 나면

남은 것은 재뿐이다.

소녀는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다.

 

 

 

'좋은 시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그리고 하루를 살면서  (0) 2010.06.05
(펌)참 맑고 좋은 생각  (0) 2010.01.18
한뫼 정봉 조세용님의 시 몇편  (0) 2009.05.15
갈망(渴望) /조세용님  (0) 2008.12.05
[스크랩] 명언과 가을 그림  (0) 2008.10.07